원제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나는가 (How Democracy Ends)>를 번역한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은 트럼프 1기 집권기인 2018년 출간되었는데, 다소 자극적인 번역 제목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트럼프 2기와 국내상황을 고려할 때 여전히 시의적절한 인사이트를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국내 제목에서 내세운 세 가지를 다루고 저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쿠데타와 관련해서는, 폭력적이고 국가를 한 번에 전복하는 방식의 쿠데타는 21세기 민주국가에서 발생하기 거의 불가능하지만, 소리 없이 다가오는 현대적인 방식의 쿠데타는 가능하고 이런 상황하에서 국민은 쿠데타가 일어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도 힘듭니다. 이미 권력을 가진 행정부가 민주주의의 진행을 유예하거나 행정권의 과용으로 민주주의라는 형태는 유지한 채 점진적으로 민주적 체제를 약화시키는 방식이죠. 트럼프 1기의 방식도 이에 가까웠고, 윤석열 정권의 방식도 행정부의 법적 권한을 최대한 이용하여 서서히 민주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다 총선의 패배로 인해 더 이상의 진행이 힘들어지자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선회하려다 실패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와이프는 계엄 후 상황을 “다 잘했어. 윤석열도 잘했고, 민주당도 잘했고, 국민도 잘했어”라고 평가했는데, 그 이유는 더 이상 2년여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나락에 빠지는 일을 보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였습니다. 실제로 윤석열과 국민의 힘이 조금만 더 영특했다면 수많은 행정명령과 제도개선으로 남은 임기동안 민주주의를 한층 후퇴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이번 사태로 노화되어 가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젊은 민주주의로 회춘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아직도 폭력적 방법을 동원해 헌정중단을 획책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헌법적 절차를 <헌정중단>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옹호하는 대의권자들과 그 지지자들로 인해 민주주의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할 것 입니다만, 역사적 사례들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는 언제나 허약한 듯 보이고 취약한 부분을 노출해 왔지만 의외로 뛰어난 재생력을 보이며 버텨왔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더 크게 위협하는 것은 다소 답답하고 느린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대한 불신, 그래서 뭔가 빠르고 시원한 방식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역사의 사례는 늘 그런 갈망이 폭군과 독재를 불러왔으니까요.
다른 민주주의의 위협인 대재앙과 정보권력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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