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워(D-War)를 봤습니다. 요즘 일고 있는 논란들이 결국 모두 틀린 이야기는 아니더군요. 영화적으로는 혹평 받을만 하게 엄청나게 못만들었고, 관객으로서 보기에는 그럭저럭 재미 있는 장면도 제법 있었습니다. 사실 양측(이런게 있다면)의 주장이 서로 배타적이지는 않았죠. 극단적으로 쓰레기라는 주장과 명작이라는 주장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결국 별로다와 재미 있다 정도에서 나눠지고 영화적으로 엉망이어도 재미는 있을 수 있으니까요.
제가 보고 느낀점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을수 있습니다만, 스토리야 널리 공개된 것이라 큰 스포일러는 없을 듯합니다)
1. 서사구조, 스토리, 그리고 종합예술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제가 보기에 스토리는 제법 든든하다는 느낌입니다. "반지의 제왕"의 배경인 "실마릴리온" 처럼 "디워"에 대해서도 영화 밖의 배경 스토리도 있는 듯하고 개천에서 용 나는 스토리,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는 이야기, 운명적인 연인, 운명을 거부하려 하지만 결국은 순종하는 운명의 담지자,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딸을 지키려다 죽고 마는 아버지의 부정, 운명을 거부하고 택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스러운 사랑의 죽음, 주요사건에 개입은 할 수 없지만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 간달프적 멘토, 질서를 위해 순교자를 만들어야 하는 공공기관의 음모, 악의 추종자, 말도 안되는 뻘짓을 해대는 친구를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는 친구, 결정적 계기로 힘을 얻어 악을 응징하는 내용 등, 디워에 들어 있는 서사구조들은 너무 많아서 빈약하기는 커녕 한 영화에서 모두 다루기에는 복잡하기까지 할 정도죠. 일반적인 블록버스터 헐리웃 영화에 비하면 많은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어 심형래 감독이 큰소리 칠만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수많은 스토리 라인들, 그리고 운명의 날줄과 씨줄들이 정교하게 얽혀서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게 디워의 약점이지 스토리가 없는 게 약점은 아닙니다. 이중 어느 스토리 라인이나 캐럭터도 제게는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 함께 하는 긴박감을 느끼게 하지 못했습니다.
스토리간의 논리적 전개가 미흡해서일까요? 영화는 논리로만 보는 게 아니죠. 최고의 예술중 하나로 대접받는 오페라를 보면 빈약한 스토리에 논리적 전개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그 갭을 메워줍니다. 관객은 가수의 열창과 아름다운 멜로디, 장엄한 화음에 매료되어 어느덧 주인공과 동화되고, 함께 살인을 저지르는 공모자가 되기도 하고, 전투에 함께 나가 싸우는 전우가 되기도, 또 때로는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연인이 되기도 하죠. 무대공간에서 이 모든 것은 현실이 되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어느덧 모호해집니다. 물론 갭을 메워주는 이 중추적 역할은 음악이지만 무대연출이나 조명 등이 함께 그 역할을 수행하죠.
마찬가지로 필름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종합예술"인 영화에서는 이 스토리의 "논리"를 영상과, 연기, 음악, 조명, CG 등이 만들어 냅니다. 나랑 상관 없지만 죽이고 싶을 만큼 악당을 밉게 만드는 것도, 분명히 영화속의 일이지만 내가 브라퀴에 쫒기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도 다 이 "종합적인 힘"의 결과죠. 이 종합을 컨트롤 하는 것은 당연히 감독이구요. 헌데, 전 디워를 보면서 주인공들은 쉴 틈 없이 도망 다니고 뛰고, 숨고 하는데 단 한순간도, 그들과 호흡을 맞추거나 긴장감에 심장박동이 빨라진적이 없었습니다. 그건 그들의 이야기였던 것이죠. (뭐, 난 두 주인공이 브라퀴에게 쫒기는 장면들에서 심장마비로 죽을 뻔 했다는 분들이 계시면 그거야 취향이시니 뭐랄 수 없구요.^^)
비슷하게 괴수가 나오는 "쥬라기 공원"의 티-렉스 장면을 생각해 보시죠. 그냥 첼로의 저음 만으로 공포가 밀려들던 "죠스"의 한 장면을 생각해 보셔도 좋구요. 아니면 주인공이 사실은 유령이라는 것을 깨닫고 느끼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던 그래서 가슴 한켠이 아파오면서 소름이 돋던 "식스센스"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시던가요. 디워는 그냥 LA에 있었던 괴수등장 사건 뉴스를 보는 느낌 그 이상이 아닙니다. 그냥 이야기만 전해줄 뿐 종합예술로서의 "표현"이 없는 것이죠. 이점에서 평론가들이 "영화"로서의 디워에 혹평을 가했던 것은 너무나 정당한 것이죠.
2. CG 또는 볼거리
우선 저는 디지털 상영관에서 보았습니다. 필름은 어떤지 몰라도 디지털 상영의 화질은 놀랄 정도로 별로였습니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영화만 보시는 분들이야 참을 수 있으시겠지만 저로서는 일반적인 DVD 화질 보다 못한 느낌이 들더군요. 움직임이 별로 없는 장면은 그냥 참을만 한데 동적인 부분에서는 참기 힘들었습니다. 아울러 디테일적인 것을 보자면 사람들의 대화장면(특히 이든과 부루스의 사무실 대화)에서 카메라의 포커싱이 대화의 흐름과는 전혀 맞지 않더군요. 대사를 따라가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심형래 감독이 "반지의 제왕"을 비교 하곤 했는데, 오히려 비교대상은 CG가 아니고 "반지의 제왕"의 대화 장면에서 포커싱, 조명, 그리고 CG까지 얼마나 대화의 흐름과 감정의 기복을 뒷받침 해주는지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CG의 품질은 "국내산"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고도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레퍼런스급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괴수들이라 해도 그들의 감정, (시점으로는 어느덧 옛날 영화인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을 생각해 보세요) 특히 브라퀴는 그 분노와 집착이 CG로 들어나야 할텐데 그렇지 않았답니다.배우들도 그런 감정을 들어낼 틈이 없는데 괴수에게 까지 그걸 기대하냐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볼거리 차원에서는 자랑하는 LA의 전투신은 훌륭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감정적 긴박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화려하고 볼 것 많은 영상만으로도 훌륭했죠. 어릴적 공룡을 좋아하는 성장 단계를 거친 남자로서 (여자의 성장 단계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공룡, 아니 괴수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3. 결론
예전 이와이 슈운지의 "4월 이야기"를 보고 "미소녀 동영상"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같은 논리로 디워는 "이무기 동영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종합예술인 "영화적" 관점에서는 별볼일 없고, 볼거리를 제공 하는 "동영상"으로서는 미덕이 있다는 말씀이죠. 결국 관객도, 평론가도 틀리지는 않았다는 말씀.^^
MF[ME]
*PS : 만약 심형래 감독이 사실은 디워를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을 비꼬기 위한 패러디 영화로"영화적 문법"은 없고 볼거리는 풍성한 디워를 만들었다면 좀 다른 이야기 일수도 있겠습니다.^^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 나오는 심형래 감독이 헐리웃 간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한장, 그것이 결국은 심형래 감독의한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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