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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부다페스트 1900년 (존 루카스 / 글항아리)

by 만술[ME] 2023. 8. 1.

1900년의 비인이나 파리를 다룬 흥미로운 책은 몇몇 번역본이 나와있습니다. 비인의 경우는 (디자인을 포함한) 미술과 건축에 중점을 두고 음악, 정신분석학과 기타 문화를 곁들인 <비엔나 1900>(브란트슈태터 / 예경)이나 보다 깊이 있게 정치, 링슈트라세, 크림트, 정신분석학 등을 문예비평가의 눈으로 분석한 <세기말 빈>(쇼르스케 / 글항아리) 같은 뛰어난 책이 있고, 파리의 경우에는 1871년부터 1929년까지를 세 권에 걸쳐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구성한 메콜리프의 3부작(현암사)이 그런 책이죠. 하지만 1900년의 부다페스트를 다룬 책이 번역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일단 저는 헝가리는 물론 부다페스트를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부다페스트의 1900년을 가로지르는 인물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낯선 이름들입니다. 그나마 어느 정도 누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아는 건 바르톡이나 코다이 같은 음악가 아니면, 루카치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위에 적은 1900년의 비인이나 파리가 너무나 친숙한 이름들의 향연인 것과는 대조적이죠. 따라서 부다페스트가 비인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양대축을 구성했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신선함과 낯섬 - 이것은 부다페스트를 알아가는 재미를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질감과 힘듦을 동반했습니다. 비인과 파리의 이야기가 익히아는 주인공들이 익히아는 커다란 틀에서 그럴싸한 변주를 해나가는 잘 짜인 아카데미 수상작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면, 부다페스트의 1900년은 새롭고 뭔가 알 수 없는 감동을 주지만 불편하고 불친절한 유럽 영화제에 출품한 작가주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그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화면과 주인공이 아름다운 영화라는 점은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존 루카스의 부다페스트에 대한 서술은 문학적이고 따뜻합니다. 사변적이거나 감정을 배제한 차가운 이성에 의존한 책이 아닙니다. 그 따뜻함이 부다페스트에 대한 애정이기는 하지만 편파적이어서 방향성을 상실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이름으로만 알거나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던 부다페스트라는 도시를 이 책을 한번 읽었다고 친숙한 도시로 생각하게 되지는 않습니다만, 이 책을 읽음로써 헝가리나 부다페스트의 역사가 좀 더 궁금해지고, 그곳의 사람들이 궁금해지고, 여행 가이드북이라도 한 권 읽어보고 싶어지고, 몇 년 안에는 한번 직접 방문해 본 뒤,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아마도 부다페스트와 그곳에 1900년을 살았던 사람들이 비인이나 파리에 1900년을 살았던 사람들 만큼 제게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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