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예술 - 공연

[음악]모차르트 오페라 <이도메네오>

만술[ME] 2025. 3. 11. 14:18
Idomeneus coming back, Palais Niel, France

 
 
 [오페라에 대하여]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유명한 영웅이자 크레타의 왕인 이도메네우스에 대한 전승을 다루고 있는 오페라입니다. 다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전승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 후 크레타로 귀환하는 과정의 후반부와 도착 후의 이야기인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는 이도메네우스가 선조들의 왕국인 크레타에서 추방되어 크레타의 해안들이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으며, 이를 기회삼아 아이네이스와 그 일행은 선조들의 나라인 크레타로 가자고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3권 122절 이하) 이도메네우스는 트로이에서의 귀환과정에서 신들에게 크레타에서 도착 후 처음 만나는 생물을 희생으로 바치겠다고 맹세했는데, 하필 그것이 마중 나온 아들이었고 그가 맹세를 이행하자 크레타에 역병이 돌아 국민들은 이를 잔혹한 행위에 대한 신의 노여움으로 생각해 이도메네우스를 추방했다는 전승인데,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는 이 전승에 기반해서 현대 할리우드의 영화들처럼 상당한 각색을 통해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에서 아들 이다만테와 트로이아의 공주 (프리아모스야 워낙 자식이 많았으니 한 명쯤 크레타에 포로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일리아의 사랑이야기, 아가멤논의 딸인 엘렉트라와의 삼각관계가 추가됩니다. 이를 통해 신에 대한 복종과 아들에 대한 사랑을 선택해야 하는 아버지의 고뇌(아도메네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들(이다만테),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를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킨 자의 아들을 사랑하게 된 운명에 대한 고뇌(일리아), 위대한 아트레우스 가문의 딸이지만 멸망한 나라 출신의 노예에게 남자를 빼앗기게 된 자존심 강한 여성의 분노(엘렉트라) 등 다양한 층위의 갈등을 음악으로 담아낼 수 있게 됩니다.  

영화에도 끊임없이 <극장판>, <감독판>, <확장판> 등이 나오지만, 이런 개정의 욕심과 필요는 영화감독만 느끼는 것은 아니고 최근에만 있었던 일도 아닙니다. 오페라의 경우에는 공연에 참가하는 가수에 따라 아리아가 빠지거나 추가되는 일은 흔했고, 기존 공연의 성과에 따라 다양한 편집과 수정이 가해지는 건 다반사였습니다. 표절왕 핸델은 말할 것 없고, 로시니도 다른 곳에 사용한 음악을 돌려 사용하는 일이 흔했고요.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도 마찬가지로, 현대 극장을 위한 공연을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판본>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오페라는 뮌헨의 축제를 위해 의뢰된 작품인데, 작곡을 하면서, 그리고 초연을 준비하면서 공연장의 상황과 줄거리의 정합성을 위해 작곡가 스스로 생략과 편집을 행해 초연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이 오페라에서 가장 핫한 엘렉트라의 아리아인 <오레스테스와 아이아스>는 초연에서 빠져 있습니다. 뮌헨에서의 공연은 축제 공연이었기에 3회 공연으로 막을 내리고 <이도메네오>는 잊혔습니다만, 모차르트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던지 몇 년 뒤에 빈에서 비공식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이런저런 개작을 단행하고, 카스트라토가 맡았던 이다만테도 (가수를 구할 수 없었기에) 테너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이 공연이 <이도메네오>가 다른 극장에서 상연되거나 하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고, 결국은 다시 잊히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고 각본 자체도 오페라 세리아를 벗어나는 부분도 많았지만 여전히 그 틀은 유지하기에 세리아로서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어 정합성도 결여된 부분이 많은지라 어떤 곡을 어떤 순서로 짜 맞추어 공연할 것인가(또는 어떤 곡을 빼어버릴 것인가)가 실제 공연에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음반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로 어떤 곡을 어떤 순서로 넣을지가 중요한데, 아르농쿠르나 가디너 같은 시대연주의 거장들은 음반이라는 장점을 살려 빠진 곡들이나 다른 버전을 음반 말미에 부록으로 제공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아울러 뮌헨 버전과 빈 버전의 근본적인 차이인 이다만테를 남성 테너가 부를 것인가 카스트라토를 대신할 여성에게 맡길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80년대까지의 경향이 테너가 이다만테를 부르는 것이었다면 이후 시대연주의 경향과 함께 여성이 이다만테를 부르곤 하는데, 아마 모차르트의 의도가 카스트라토에 있고, 이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만, 뮌헨에서의 모차르트의 선택이 작곡상의 <의도>라기보다는 가수진의 <상황>이기에 오히려 빈 버전의 테너 이다만테가 더 모차르트의 뜻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기는 합니다. 아무튼 현재의 추세는 과거와 달리 여성 이다만테입니다.  

[영상물]

오페라 <미트리다테>에 대한 글에서 아르농쿠르가 지휘한 포넬의 영화판 영상이 <미트리다테>의 부활의 시초였음을 이야기 한 바 있는데, 포넬은 모차르트의 다른 오페라 세리아인 <이도메네오>의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포넬의 연출로 1982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이도메네오>가 공연되고 이 공연의 성과로 이후 <이도메네오>는 오페라 극장의 레퍼토리로 정착하게 됩니다. 메트는 이 82년이 <이도메네오>의 첫 공연이었는데, 이 공연이 성사된 데에는 지휘자인 레바인의 노력이 중요했겠만, 이도메네오를 부른 파바로티의 기여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바로티는 대중적 명성과 달리 그의 오페라 주요 레퍼토리는 이탈리아 오페라 10 작품 정도로 한정되어 있었고, 무대에서 부른 오페라도 20 작품 정도에 불과한데, 1982년에는 그가 그의 이름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던 모차르트의 오페라, 그것도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이도메네오>에 등장한 것입니다. 비록 파바로티는 이 시즌 13번의 공연 중 초반 7번에만 등장하지만, 이 실황은 영상으로 발매되었고(레바인 지휘, DG), 1년 뒤에는 당시 파바로티의 전속 레이블이던 데카에서 프리차드 지휘로 발차, 포프, 그루베로바 등을 기용하여 스튜디오 녹음으로 음반을 발매하기까지 하게 됩니다. 1982년 메트 영상은 파바로티 외에도 코투르바스, 베렌스, 폰 슈타테 등 (모차르트랑 연결되지는 않지만) 최고 수준의 배역을 자랑하는데, 포넬의 연출은 전형적인 포넬의 무대로 상징성은 훌륭하지만, 역동적이지는 않아서 안 그래도 단조로울 수 있는 오페라 세리아의 드라마를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가수들의 노래 자체는 이런저런 약점을 보이긴 해도 전반적으로 훌륭하지만, 시대연주와 그 영향이 보편화된 지금 듣기에는 모차르트 오페라를 듣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시대연주 이전의 모차르트 연주 경향과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파바로티가 이도메네오를 부른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다만, 놀랍게도 파바로티는 1964년 글라인드본에서 프리차드 지휘로 <이도메네오>에서 이다만테를 부른 적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실황은 메트의 첫 <이도메네오> 공연이었고, 그때까지 대부분의 관객은 <이도메네오>를 음반으로도 접하지 못했을 터에 메트가 모차르트를 무대에 올린 것이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 정도이고 매우 드물게 <후궁탈출>이나 <코지 판 투테> 정도를 올린 것을 생각하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세리아, 아니 오페라 세리아 자체를 공연한다는 것은 모험이었고, 더구나 메트 극장의 크기를 생각하면 전형적인 모차르트 공연을 하기는 어려웠을 터라 파바로티를 포함한 가수진은 나름의 비장의 카드들을 기용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스타일을 무시한다면 음악적 성취는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메트에서 <이도메네오>는 어느 정도 레퍼토리로 정착해서 2022년의 최근 공연까지 총 79회를 기록해서 73회를 기록하고 있는 <후궁탈출>을 앞서고 있습니다. 

1974년 글라인드본 실황(프리차드, 유로아츠/스펙트럼) 영상을 보면 메트의 82년 영상을 시대 탓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과 달리 이다만테에 남성(레오 거크)을 기용했는데, 카스트라토 전통을 논외로 해도 이게 근거가 없는 방향은 아니고, 프리처드의 지휘나 다른 가수들의 가창도 82년 메트의 진용보다 잘 부르지는 못해도 더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들리게 부릅니다. 타이틀롤을 부르는 리처드 루이스는 노쇄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연기로 선방하고 있으며, 비틀리는 서정적인 일리아의 아리아를 잘 소화하고 있고, 엘렉트라를 맡은 바르스토우도 노쇄한 티는 나지만 마지막 아리아에서의 폭발력과 가창이 좋습니다. 다만 이 공연의 최대 약점은 생략이 좀 지나치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실상 1막의 대부분을 들어내고 <스타워즈> 시작처럼 1막 초반의 이야기를 자막으로 풀어낸 뒤, 이도메네오가 크레타 해안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오페라가 시작됩니다. 2, 3막에도 제법 들어낸 부분이 많아서 <이도메네오>를 2시간짜리 오페라로 축약했습니다. 무대의 폭은 사용치 않고 깊이만 사용한 연출은 나쁘지는 않지만 시종일관 답답함을 느끼게 합니다. 아울러 음향이 시대를 감안해도 질이 떨어져 아쉽습니다.   

잘츠부르크 M22 실황(노링턴 지휘/ 데카)은 M22 박스 중에서도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공연입니다. 하우스 포 모차르트의 크지 않은 무대를 잘 활용한 연출은 단순화되어 극히 현대적이고 상징적이지만 그 어떤 영상물 보다 설득력 있는 무대를 선사합니다. 특히 피트 전면부까지 활용한 무대는 독창이나 중창의 무대로 잘 활용되어 오페라 세리아와 잘 어울립니다. 넵튠을 무대장식이나 효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대사 없는) 배우를 활용함으로써 운명은 좀 더 잔혹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가수들의 심리극은 좀 더 심오해졌습니다. 바르가스는 모차르트 전문은 아니지만 훌륭한 가창과 연기를 보여줍니다. 아버지와 왕으로서의 번뇌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코체나의 이다만테도 아버지와 일리아에 대한 사랑과 왕자로서의 의무감까지 다층의 감정을 잘 소화했습니다. 시우리나의 일리아는 딱 일리아에 어울리는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로 관중을 사로잡습니다. 조금 아쉬움은 딱 여기까지 라는 건데 일리아가 공연과 음반에서 조금 더 복잡한 심리를 지닌 여인으로 묘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단순히 격한 분노가 아닌 고도의 심리극을 표현하여 다층적인 엘렉트라를 선보인 하르테로스는 그중에서도 발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대연주의 경향을 충분히 고려한 노링턴이 지휘하는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연주는 흠잡을 데 없이 투명하면서도 리듬감 넘치는 모차르트를 선보이며, 잘츠부르크 바흐합창단 역시 가창과 연기에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무대, 연기, 가창, 오케스트라와 합창 통틀어 가장 이상적인 공연으로 추천할 수 있습니다.

2008년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의 실황공연(나가노 지휘 / 메디치 아츠)은 1781년 오페라가 초연되었던 뮌헨의 쿠빌리에 극장의 리모델링 개관 공연의 하나로 역사적 의미도 가진 영상물입니다만, 연출은 유럽의 극장들의 오페라가 흔히 그렇듯 극히 현대적이고 상징적입니다. 우선 나가노의 지휘는 현대악단임에도 적절한 힘으로 시대연주적인 맛을 가미하고 있으며, 가수들의 노래는 어떤 공연에 견주어도 추천할만합니다. 마크 에인슬리의 이도메네오는 영웅의 모습과 나약한 아버지의 모습을 오가면서 적절한 모차르트적 가창을 선보이며 무대에서의 연기도 감동적이고 훌륭합니다. 놀랍게도 이다만테는 테너인 파볼 브레슬릭이 노래하는데, 테너가 노래하는 이다만테가 극적/성악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줄리안 반스의 일리아는 처음 들을 때 흔히 기대하는 청순가련형 일리아는 아니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훨씬 풍부한 사연을 담고 있는 여성으로 발전하면서 마지막의 희생을 위한 행동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아네트 다쉬가 노래하는 엘렉트라는 무대연출에 힘입어 그녀의 행동이 개인적 문제가 아닌 아트레우스 가문에 내려진 일종의 저주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여기에 아르바체까지 두 개의 아리아를 모두 부르며, 더구나 뛰어난 설정과 연기를 통해 설득력 있고, 의미 있는 아리아로 변신합니다. 현대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무대와 연출에 대해 저는 뻔한 오페라 세리아가 멋진 드라마로 변했다는 점에서 좋게 생각하지만 취향에 따라서는 선호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겁니다. 아울러 나가노는 사실상 모든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와 연주곡을 공연에 담았는데 (아리아 중에 흔히 생략되는 것 중 이도메네오의 마지막 아리아는 생략되었습니다) 공연을 마지막 합창으로 끝내지 않고 발레 음악까지 연주합니다. 그렇다 보니 약 10분여를 무대에서 거의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진행되는데 <이게 뭐지?>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현대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무대와 연출이 별로 문제가 없다면 가창이나 극적 긴장감에서 최고의 공연 중 하나로 추천합니다.    

2017년 메트 실황(메트 온디맨드 서비스)은 여전히 레바인의 지휘에 포넬의 프로덕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레바인의 지휘는 젊은 시절보다는 좀 더 부드러워지고 세부의 디테일이 살아있고, 포넬의 프로덕션도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면서 좀 더 현대적인 연출로 바뀌어 지금의 눈높이에 맞는 연출이 되었습니다. 타이틀롤은 메트 지킴이라 할 수 있는 폴렌자니가 맡아 서정적이면서도 영웅적인 노래를 들려줍니다. 일리아는 나딘 시에라, 엘렉트라는 반 덴 히버가 두 캐릭터의 개성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현대화된 만큼 일리아도 수동적이지 않고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으로, 엘렉트라는 좀 더 복잡한 야망과 광기에 사로잡힌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다만테를 부른 쿠트는 연기와 캐릭터에 있어서는 조금 아쉽지만 노래는 훌륭합니다. 고전적인 포넬의 무대를 배경으로 조금은 현대화된 상징주의적인 심리드라마가 좋은 화질로 펼쳐져서 이전 1982년 버전의 영상적/연출적 아쉬움을 달래줍니다.


[음반]

파바로티의 메트 공연이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고는 하지만, <이도메네오>의 공연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음반으로는 그 이전에도 제법 많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당시야 메이저 음반사들의 LP 제작의 전성기였기에 조금 덜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도 모차르트의 오페라 정도는 전곡 녹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음반 중 하나가 슈미트-이세르슈테트 지휘의 1971년 녹음 음반(EMI / 브릴리언트)인데 당시 이도메네오를 많이 부른 테너 중 하나인 게다가 이도메네오를, 달라포자가 이다만테를, 로덴베르거와 모저가 각각 일리아와 일렉트라를 노래합니다. 여기에 아르바체를 슈라이어가 맡았고, 연주는 스타츠카펠레 드레스덴입니다. 이 음반은 전형적인 슈미트-이세르슈테트의 음반이라 할 수 있는데, 전반적으로 모난 구석은 없고 연주도 훌륭하지만 마음을 휘어잡는 매력이 부족합니다. 가수들은 명성 대비 절정의 기량을 보이지는 못하며, 특히 이다만테는 다른 배역들에 비해 부족한 역량을 보입니다.

70년대 메이저 레이블의 다른 <이도메네오>는 뵘 지휘 스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의 77년도 DG 녹음입니다. 뵘은 비슷한 시기에 DG에서 피가로, 코지, 마술피리 등 다른 모차르트 오페라를 녹음했는데, 그 음반들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에디트 마티스가 여기서는 일리아를 맡아 매력적인 노래를 들려줍니다. 여기에 엘렉트라는 줄리아 바라디가 모범적인 가창을 보이면서 여성 캐릭터가 훌륭한 음반을 완성했습니다. 당시의 전통대로 이다만테는 테너인 슈라이어가 맡았는데, 안 그래도 테너 이다만테가 어색한 현시점에 와서 듣기에는 음색이나 발성이 이다만테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슈라이어는 슈미트-이세르슈테트 음반의 아르바체가 더 좋았습니다. 타이틀롤인 이도메네오를 부른 오흐만의 가창도 영웅이자 아버지를 표현하기에는 좀 힘이 많이 빠진 연주입니다. 더구나 중심 아리아인 <Four del Mar>를 축약된 비인 버전으로 불렀습니다. 아르바체의 아리아는 아예 생략되었고, 아래 데이비스 버전과 달리 부록으로도 제공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뵘의 지휘는 전반적으로 훌륭하지만, 생동감이 조금 더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여성 캐릭터의 가창과 뵘의 지휘는 훌륭하지만, 남성 가수들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음반이라 보편적인 추천은 어려울듯합니다.

필립스의 모차르트 전곡 세트에 포함된 콜린 데이비스의 91년도 음반은 슈미트-이세르슈테트 음반과 동년배인 첫 필립스 음반(68년) 이후 새롭게 녹음한 것으로 모차르트를 잘 지휘했던 데이비스 답게 빼어난 연주입니다. 가수진도 아라이자, 헨드릭스, 알렉산더, 멘처 등이 자신의 역량을 훌륭하게 발휘하고 있습니다. 시대연주 음반이 아닌 음반으로 가장 추천할만한 완성도를 가졌다고 생각되는데, 헨드릭스는 천상의 목소리로 일리아를 멋지게 소화하며, 상대역인 멘처의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이다만테의 목소리와 좋은 궁합을 보여줍니다. 알렉산더도 과하지 않게 일렉트라의 감정선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라이자의 창법에 대해서는 약간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듯합니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아르바체의 아리아 두 개가 빠졌다는 것인데, 다행히 부록으로는 수록되어 있습니다. 슈미트-이세르슈테트의 음반이 조금은 밍밍한 평양냉면이라면, 데이비스의 음반은 MSG까지는 아니지만 육수를 진하게 우려 고기향이 많이 풍기는 진한 맛 평양냉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80년대에 파바로티가 데카에서 이도메네오 음반을 남긴 것처럼 90년대에는 도밍고가 DG에서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와 이도메네오 음반을 남깁니다. 도밍고를 비롯해서 음반에 참여한 가수들은 배역의 적합함에 있어 의문을 자아내는 이름들인데, 녹음의 결과 또한 의외입니다. 독특한 선택이 잘 맞아떨어져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 상당히 들을만한 음반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선 레바인이 지휘하는 메트 오케스트라는 시대연주의 경향에 맞서 전통 오케스트라의 힘을 과시하듯 때로는 박진감 있게, 때로는 섬세하게 모차르트의 음악을 가지고 놀면서 음악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레바인의 템포 설정도 모난 곳 없이 자연스럽고 전혀 지루함이 없습니다. 메트의 함창단도 훌륭하고요. 일리아를 부른 머피는 음색이 아름답지만 조금 여린 감이 있는데, 이다만테를 맡기에는 조금 덜 묵직한 메조인 바르톨리와 만남으로써 오히려 조화롭게 들립니다. 이 두 명의 음색은 이도메네오로는 전형적이지 않은 도밍고의 목소리와 또 조화가 잘되어 중창에서 빛을 발합니다. 도밍고는 솔로 아리아에서도 훌륭한 가창을 들려줍니다. 여기에 엘렉트라를 맡은 바네스는 서정적 아리아와 격정적 아리아를 그 극단으로 잘 소화하는데, 특히 마지막 아리아에서 레바인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의 궁합은 기가 막힙니다. 여기에 테너가 아닌 바리톤 햄슨이 아르바체를 부르는데, 두 아리아 모두 생략하지 않고 다른 음반들의 테너들 무색하게 설득력 있는 가창을 들려줍니다. 화룡점정으로 넵튠의 목소리는 브린 테어벨이 카메오로 출연합니다. 정통파 모차르트는 아니지만 정말 기막히게 조리된 이국적 퓨전요리 한상이 이 음반입니다.    

아르농쿠르가 취리히 오페라를 이용해 시대연주의 성과를 적극 반영하여 녹음한 음반(텔덱)은 늘 그렇듯 호불호가 갈릴만한 지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불호할 부분은 적은 편입니다. 캐스팅은 탑스타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인 가창을 들려줍니다. 타이틀롤을 부른 홀베그는 딱 적당한 정도의 영웅적 모차르트 테너를 들려줍니다. 모든 순간 매끄러운 가창을 들려주지는 않지만 모든 부분이 무난한 정도는 넘어서 있습니다. 슈미트의 이다만테나 팔머의 엘렉트라도 자기 몫 이상을  해냅니다. 특히 주목할 가수는 야카르의 일리아인데 어여쁘고 야리야리한 그냥 전형적인 <공주>를 넘어서는 삶의 깊이를 잘 표현했습니다. 사실 트로이를 몰락시킨 주역인 이도메네오의 아들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희생할 결심까지 가는 복잡한 캐릭터인데, 많은 음반과 공연의 일리아는 그냥 청순가련형의 단순한 여인으로 표현된 바 있어 야카르의 일리아는 특히 칭찬하고 싶습니다. 아르농쿠르의 음반은 특별히 나쁜 점은 없고 곳곳에 뛰어난 부분이 보이는 좋은 연주로 추천할만합니다.

가디너는 90년대 시대악기를 이용해서 모차르트의 주요 오페라들을 실황 녹음이나 실황과 연계한 녹음으로 음반을 발매했는데 <이도메네오>는 90년 6월 퀸 엘리자베스 홀 실황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디너가 지휘하는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트의 연주는 서곡부터 시대연주의 맛을 확실하게 풍깁니다. 템포가 전반적으로 빠르고 시대연주에서 느껴지는 통통 튀는 느낌도 자주 볼 수 있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 평가하자면 그 빠름과 생기 속에서 지루한 부분이 제법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수들은 모두 제 몫을 해내는데, 특히 타이틀롤을 맡은 롤프 존슨과 이다만테를 부른 폰 오터가 훌륭합니다. 롤프 존슨의 이도메네오는 영웅적 면모가 다소 부족하지만 섬세하고 야리야리하면서도 단단함을 갖춘 가창으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거의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폰 오터의 이다만테도 테너 버전에 비해 남성성은 좀 부족하지만 가창에 있어서는 최상을 보여주며 맥네어의 일리아 역시 캐릭터가 좀 평이하게 느껴지기는 해도 부족함 없는 가창이며, 마르틴펠토의 엘렉트라는 광기와 분노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평균 이상의 가창은 들려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연주와 가창에 있어 흠잡기 힘들지만 현재 시점에서 듣기에는, 오페라가 <드라마>라는 전제하에 그 극적 흥미진진함이 어딘지 부족한 음반이라 하겠습니다.  

찰스 맥커라스가 시대연주를 반영하여 스코티시 체임버와 녹음한 음반(EMI / 2008)은 당시 EMI의 보석으로 자리매김해서 전문인 가곡은 물론 오페라 분야에도 이런저런 녹음을 진행하던 이언 보스트리지를 타이틀롤로 내세웠는데 노래자체는 빼어나지만 야리야리한 그의 목소리와 창법은 이도메네오라는 캐릭터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당시 여성을 기용하는 추세에는 어긋나지만 이다만테를 불렀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스트리지와 함께 다른 배역들도 뭐랄까 같은 성부에서도 음색의 중심이 고역 쪽에 치중된 가수들로 배정되어 음반 전체가 밸런스가 안 맞는 느낌이 듭니다. 헌트 리버슨은 늘 감동적이던 핸델과 달리 들쑥날쑥한 느낌인데, 아리아들은 좋지만 일리아와의 케미가 좋지 않습니다. 일리아를 부른 리사 밀네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지만 고역 쪽의 약간 날 선 느낌이 듭니다. 헌트 리버슨과 더불어 이 음반에서 가장 훌륭하게 역할을 소화한 것은 바바라 프리톨리의 엘렉트라로 뛰어난 테크닉으로 마지막 아리아를 멋지게 소화합니다. 더불어 가디너 녹음에서 이도메네오를 불렀던 롤프 존슨이 아르바체를 불렀는데, 딱 그 역할에 맡게 호소력 있게 불러줍니다. 맥커라스의 스코티시 채임버의 연주도 유려하고 아름다워 모차르트의 맛을 잘 살리고, 가수들도 배역의 적합성과 별개로 수준 있는 가창을 들려주는데도 이 음반이 매력적이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녹음에 있습니다. 우선 오케스트라가 노래에 비해 너무 뒤로 묻히는 느낌으로 녹음되었고, 고음에 비해 저음부가 부각되지 않아 전반적으로 윤기는 있지만 생기는 없는 녹음이 되어 극적 긴장감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르네 야콥스의 시대연주 음반(아르모니아 문디 / 2008)은 시대연주 경쟁자인 가디너나 매커라스 음반 보다 좀 더 극적인 표현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이 극적 표현이 때로는 템포나 밸런스에서 뭔가 이상야릇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말이죠. 여기에 매우 강조된 레치타티보 세코도 취향이 갈릴 수 있습니다. 야콥스의 선택은 일반적인 음반이나 공연이 레치타티보 세코를 줄이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쪽을 택한 것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부각하고 있습니다. 야콥스의 다른 모차르트 오페라에서 포르테피아노를 이용한 이 레치타티보는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에 반해 <이도메네오>에서는 저도 처음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더군요. 가수들의 노래는 전반적으로 수준급입니다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타이틀롤인 리처드 크로프트는 기술적이나 음악적으로 매우 훌륭한 모차르트 테너를 보여주는데, 조금 영웅적인 면이 더해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핑크의 이다만테는 가디너판의 폰 오터에 버금가는 설득력 있는 노래를 들려주고, 임선혜가 맡은 일리아와 합이 잘 맞습니다. 임선혜는 전반적으로 훌륭하지만, 캐릭터의 발전이라면 면에서는 다소 진폭이 크지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펜다찬스카의 엘렉트라는 극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는 노래를 들려줍니다. 일반적인 무대보다 더 극적이지만 일상적이지는 않은 야콥스의 접근법이 취향에 맞는다면 가장 좋은 시대연주 음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록 1 : 잘츠부르크 1956년 실황 음반에 대하여]

DG의 스튜디오 녹음과 별개로 뵘의 음반으로는 1956년 잘츠부르크 축제 실황녹음(VPO / 월홀)이 있습니다. 56년의 실황녹음 수준에 비해서도 음질이 열악한 편이고, 당시의 공연 관례 대로 많은 생략이 있어 일반적인 추천 음반과 비교로 다루지 않고 부록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타이틀롤을 맡은 루돌프 쇼크를 비롯한 가수들의 노래가 (특히 실황녹음인 관계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당시 실황의 분위기를 잘 전해주며 흡인력이 있어 관객으로 참여해서 들었다면 매우 만족하며 들었을 것 같습니다. 뵘의 지휘도 앞서 리뷰한 스튜디오 녹음보다 더 열정적이고 스튜디오 녹음에서 다소 느껴지던 지루함을 다 덜어냈습니다. 이다만테를 테너인 크멘트가 부르고, 연주시간도 2시간 남짓으로 생략과 도치가 많은 데다 시기를 생각해도 녹음의 질도 좋지 않아 현대적 관점에서는 추천하기 어렵지만, <이도메네오>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들어보면 시종일관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으로 추천합니다.  

[부록 2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편곡 버전에 대하여]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도메네오>는 모차르트 시절에도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고, 이후에도 극장에 올려지는 레퍼토리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러던 와중에 1930/31년 시즌이 다가오면서 <이도메네오> 초연 150주년이 돌아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각국의 메이저 오페라 극장의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기도 했지만, 잊힌 데다 오페라 세리아라는 낡은 장르이기까지 한 이 오페라를 원작 그래도 공연한다는 것 또한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당시에 주로 공연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피가로>, <돈조반니>, <마술피리> 정도였고, <코지 판 투테> 조차도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세리아를 공연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겠죠. 결국 뮌헨 극장과 빈 극장은 모두 당대 음악가의 손을 빌어 수정된 버전으로 당대 관객에게 어필하기로 합니다. 뮌헨은 울프-페라리에게, 빈은 극장과 관련 깊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이 일을 의뢰합니다.

슈트라우스는 우선 벨러스타인에게 원작의 이탈리아어를 독일어로 바꾸도록 주문하고, 줄거리의 정합성을 위해 곡들의 순서를 바꾸고, 많은 부분(특히 리치타티보)은 과감하게 생략합니다. 그래서 엘렉트라는 공주가 아닌 사제 이스메네로 바뀝니다. 아울러 남겨놓은 레치타티보도 자신의 관현악 버전으로 수정합니다. 다만 아리아들이나 합창은 모차르트의 원곡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수정을 가했죠. 이 1931년 공연은 많은 모차르트 애호가들에게 혹평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들어보아도 한 오페라 내에서 슈트라우스의 음악과 모차르트의 음악이 따로 놀면서 반복 교차되는 느낌입니다. 조금 전까지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듣는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나의 아리아가 끝난 순간 갑자기 전형적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가 시작되는 식이죠. 이렇다보니 가수를 선택하는 일도 쉽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차이가 극명한 모차르트의 창법과 스트라우스의 창법을 한 오페라에서 수시로 왔다갔다 하며 소화할 수 있어야하니까요. 더구나 가사까지 독일어다 보니 익숙한 아리아 조차도 어색하게 들립니다.

스트라우스 편곡 버전의 <이도메네오>의 첫 녹음은 다이내믹 레이블로 나온 로바리스 지휘의 음반이지만, 슈트라우스 편곡 버전의 <이도메네오>를 듣기 위해서라면 파비오 루이지가 스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을 이끌고 2006년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공연했던 실황녹음(오르페오)이 좋습니다. 배테랑 오페라 지휘자답게 서곡부터 귀를 사로잡습니다. 모차르트적인 부분과 슈트라우스적인 부분을 루이지와 스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은 모두 뛰어나게 소화합니다. 가수들도 나쁘지는 않지만, 오페라 자체가 어색하기에 가수들이 이 모차르트-슈트라우스의 진자운동을 천의무봉처럼 소화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겠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봐도 좋지만, 이미 오페라 극장의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오리지널 모차르트 버전을 놔두고 이 슈트라우스 버전을 선호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