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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3부작 - <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과 제국>, <제2파운데이션>

만술[ME] 2025. 6. 12. 15:18

다른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제가 처음 접한 동화가 아닌 책이자, 첫 SF는 쥴 베른의 <해저 2만 리>였습니다. 이후 초등학교부터는 추리소설과 함께 아이디어회관의 SF 시리즈를 탐독했고 아마도 출간된 모든 시리즈를 읽었지만 한동안 SF는 영화로만 접하고 제가 다시 SF를 읽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여 년 전 정도부터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디어회관 SF와 2010년대 유통되던 SF 사이의 간극에서 절판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거나 지난 10여 년의 세월 속에 제가 간과했던 SF들이 제법 많을 수밖에 없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읽을 책들의 목록에서만 오랜 기간을 보내던 책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아이디어회관의 SF 시리즈가 아시모프의 <강철도시> (<강철동굴>이 올바른 번역이지만, 이 시리즈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일본판의 제목을 따와서 <강철도시>가 되었습니다)였고 추리소설에만 빠져있는 제가 다른 세상에 대한 책도 읽기를 바라셨던 어머님의 탁월한 선택답게 추리와 SF가 적절히 버무려진 덕에 SF라는 장르에도 빠지게 되었기에 아시모프는 제게 소중한 작가였습니다. 그리고 <강철도시>가 속한 로봇 시리즈와 함께 아시모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파운데이션 시리즈입니다. 

 

파운데이션 3부작과 함께 프리퀄과 시퀄이 엮여 7권으로 완결되어 있습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애플 TV+의 드라마로 이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당시에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어보니 몇몇 설정과 등장인물의 이름만 빌려온 전혀 다른 작품이더군요. 드라마에서 그나마 흥미로웠던 제국과 황제의 이야기가 책에는 사실상 거의 나오지 않아서 매우 실망했습니다. 물론 책의 내용을 그대로 드라마로 만든다면 지금의 드라마 보다 더 나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1940년대에 쓴 작품을 그 시대에서는 SF의 배경으로나 존재하던 2020년대에 설득력 있는 드라마로 만든다는 것은, 1940년대 책을 그 시대를 감안하면서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책에 영감을 받아 집필했다고는 하지만, 은하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는 단일 세력의 정치체제가 고색창연한 황제정이라는 사실은 하드 SF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느낌이 강하게 들게 합니다. 더구나 이 황제정의 형태는 엄청난 기간 동안 유지되고 있어요. 더디게 문명과 정신이 발전하던 로마시대에도 제정과 공화정이 교차했는데, 고도의 과학문명을 가지고 성간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 로마를 오마주한 듯 황제는 가끔 바뀌지만, 정치체제는 우주적 시간 동안 황제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설득력이 없습니다. 

 

심리역사학은 대규모의 인간행동에 대한 예측으로 역사적/통계적 귀결을 예측하는 학문인데, 막상 책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극히 소수의 결정과 행동으로 역사가 결정됩니다. 우주적 규모나 행성적 규모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대한민국에서 쿠데타를 하는데도 그 중심인물이 제법 되는데, 파운데이션에서는 사실상 한두 명이 의논하고 결정해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냥 엑스트라로라도 여러 명이 토의나 음모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에요. 물론 심리역사학에서 말하는 조건은 대다수 인류의 행동에 대한 예측으로 결정되어 있고, 개인은 그 실제화에 작은 불을 댕긴 것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그 계기들이 너무나 개인화되어 있고 특별하고, 우연적이기까지 합니다.  

 

시간과 공간으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우주에서 뮬 같은 압도적인 존재가 나타날 수도 있고, 그게 하필이면 파운데이션 연대기의 주요 변곡점에 나타날 수도 있다고 양보를 해도, 제2파운데이션을 제1파운데이션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결과를 산정하여 설계한 해리 샐던이 사실상 제2파운데이션의 자연적 발생이라 할 수 있는 뮬을 전혀 변수로 넣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물론 그 확률이 너무 낮아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요. 아울러 파운데이션이야 기존의 것을 지키고 발전시키면 될 일이었겠지만, 그 짧은 기간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제2파운데이션과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뮬이 등장하던 순간부터 대략적으로 마지막 결말까지가 예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뮬의 동기와 행동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영화 같은 매체라면 짧은 시간 속에 관객의 생각의 흐름을 감독이 이끌어나가기 때문에 다 보고 나서 말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할 사건이나 동기의 허점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감독의 흐름에 대한 주도권 덕에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독자가 책을 읽는 흐름을 주도할 수 있어 독자의 사고가 더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는 문학에서는 이런 허점은 쉽게 드러나게 마련이고, 뮬의 행동과 동기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뮬의 돌연변이로서의 한계로 인한 빠른 죽음과 동일한 능력을 가진 개체를 재생산할 수 없는 한계를 알고 있었다면 그 어려운 일을 벌인 제2파운데이션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우주적 시간 속에서 몇십 년은 그냥 뮬이 하고픈대로 놔두어도 제2파운데이션은 안전했을 것 같으니 말이죠.

 


 

세 권을 읽으면서 즐겁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읽는 내내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학자나 유명인들이 이 작품을 추천하거나 상찬을 마지않기는 해도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은 수없이 많은 현대적 저서들에서 더 많이 얻을 수 있고, 저는 지나간 시대의 SF 명작이라는 이유로 2020년대에 읽기에는 이 작품 이후에 수없이 보아왔던 SF에 나오는 클리셰, 설정, 사건전개, 반전 등을 생각할 때 뭔가 신선한 흥미를 느끼기는 힘들다고 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