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예술 - 공연

[음악]최근에 즐겨 들은 음반들 (2025년 5월)

만술[ME] 2025. 5. 19. 16:09

 

이제는 많은 세대에게 <수리수리 마하수리(修理修理 摩訶修理)> 보다 친숙할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를 표제로 단 베아트리스 베루의 피아노 편곡집 음반은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에서 시작해서 존 윌리암스의 (해리 포터 중) <헤드윅의 테마>까지 마법과 관련된 피아노 편곡음악을 담고 있습니다. 베루는 내지 해설에서 "편곡은 필연적으로 신성모독일 수밖에 없는데, 나는 결국 신성모독을 즐기는 것 같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어, 음반 표제인 <아브라카다브라>와 피아노 편곡이라는 의미와 음반에서 다루는 음악의 주제들을 교묘히 일치시킵니다. 음반에는 다른 편곡자의 곡도 있지만, 베루 자신의 편곡도 있는데, 연주곡으로서 난해한 곡들을 그녀의 뛰어난 테크닉으로 잘 소화하고 있어 마치 원래 피아노 곡인 듯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여기에 스타인웨이를 사용하지 않고 베젠도르퍼를 사용해 녹음했기에 베젠도르퍼 특유의 음색이 더해져, 음산한 마법의 분위기가 더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음반 내지에 일본어 번역이 포함된 점과 표지를 제외하고도 무려 7장의 연주자 사진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겠습니다.

 

 

 

연주자 중에는 어떤 음반이 나왔을 때, 그 연주자의 새로운 음반이라는 이유 때문에 레퍼토리나 평단의 비평에 관계없이 구입을 하거나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연주자는 평단의 비평이 좋은 경우에 한해 관심을 가지고 그 음반을 주목하지만, 결국 레퍼토리가 마음에 안 들거나 너무 많은 음반을 가지고 있어 구매를 망설이게 되어 결국은 그리 많지 않은 음반만 가지고 있는 연주자가 있는데, 오자와 세이지는 후자에 속하는 연주자였고, 더구나 그의 음반들이 제가 선호하는 지휘자들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딱히 주목하는 지휘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만년에 이르러 이런저런 연주회에서의 독특한 지휘모습과 전에도 언급한 쉔브룬 궁에서의 음악회에 존 윌리암스의 곡을 편성한 장본인이 오자와였다는 사실 때문에 지난 세월 동안 그의 음악을 잘못 흘려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의 사후 베를리너 필하모니커 자체제작 시리즈로 오자와 세이지에 대한 오마주 음반 세트가 발매되었고, 근자에 우연한 계기로 이 음반을 다시 반복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6장의 SACD와 1장의 BD로 구성된 음반의 모든 곡이 훌륭하지만, BD에 담긴 멘델스존 <엘리야> 실황이 가장 압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둘로비치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과 크로이체르 소나타 음반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지휘도 겸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를 유기적 연대와 다른 음반들에 비해 유난히 서정적으로 노래하듯 연주한 바이올린 협주곡도 훌륭하고 매력적이지만, 라둘로비치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편곡한 크로이체르 소나타 연주는 이 음반을 더 가치 있게 해 줍니다. 저와는 달리 순혈주의자라면 호불호가 갈릴지 모르지만, 베토벤이 처음부터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한 듯한 자연스러운 편곡은 이 친숙한 소나타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 주면서도 익숙한 맛에 깃든 새로운 향취를 느끼게 해 줍니다.  

 

 

 

위대한 아버지 때문에 묻혀있지만 CPE 바흐의 곡 중에는 아름다운 곡이 많습니다. 그의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들 중에도 아버지만큼 훌륭한 곡이 많으며, 관현악곡도 마찬가지입니다. 18세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함부르크 심포니 모음집은 음반표지의 수채화로 칠해진 다채로운 색의 원처럼 6개의 개성 넘치는 곡을 시대연주로 모두 담고 있습니다. 거친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르쉬 수채화지에 칠해진 투명한 수채화 물감처럼 연주도 투명함 속에 다양한 텍스쳐를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곡을 모르더라도 한 곡 한 곡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호연입니다.

 

 

 

 Chat GPT에게 풍경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변환해 달라고 해서 만든 듯한 음반 표지에 담긴 히사이시 조가 자신의 지브리 애니메이션 음악을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은 딸아이가 토토로 주제곡을 시종일관 읊조리고 다니는 것에 영향을 받아 한동안 들은 음반입니다. <토토로> 외에도 <나우시카>, <하울의 움직이는 성>, <포뇨> 등의 익숙한 음악들이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담겨있는 이 음반은 이런 류의 음악에 특화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로열 필하모닉답게 맛깔난 연주를 들려줍니다.

 

 

 

바인베르크의 곡을 그로스만이 지휘하는 뮌헨 유대 실내악단이 연주한 이 음반은 바인베르크와 유대라는 단어가 이 음반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바인베르크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당시 소련으로 혼자 탈출했지만, 남아 있던 가족은 수용소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후 바인베르크 자신도 소련 체제에서 유대인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늘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삶을 살아가죠. 이런 삶의 역정이 녹아 있는 듯한 곡들이 이 음반에 담겨 있는데, 특히 바이올린 곡을 첼로를 위해 편곡한 콘체르티노 작품 42는 이 음반의 백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