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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역사와 음악 (1)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 여왕과 음악 (2025.05.25 update)

만술[ME] 2025. 5. 12. 18:16

역사 마니아는 아니지만, 대학 때 서양의 사회과학을 전공함에 있어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사학을 부전공한 이래, 이런저런 책을 통해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해왔던지라 일반인에 비해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아 왔지만,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른 주요국의 역사와의 연관해서만 곁가지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스페인 역사책을 몇 권 보고 있습니다. 다른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는 영화나 드라마, 다큐 등의 풍부한 보조자료도 있지만, 스페인에 대해서는 언어적 한계 때문인지 이런 보조자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서양사에서도 주변적인 역할로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더구나 스페인의 경우, 바르셀로나에 잠시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여행으로도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기에 방문 시에 받았던 깊은 인상에 비해 경험도 별로 없습니다. 수많은 자료와 문헌에서 스페인을 가리켜 이베리아, 히스파니아, 알-안달루스 등으로 이야기하지만, 동일한 개념도 아닙니다.
 
이사벨 1세에 대해서도 콜럼버스에게 눈팅이 당했지만, 의외의 대박으로 결론 난 행운녀 정도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고 스페인 왕국의 통일이라는 위업을 이루었고, 가톨릭 단일 신앙에 힘입은 종교국가로서의 종주국의 지위로서의 스페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했기에 일부에서는 악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고요.
 
오늘 소개하는 <이사벨 1세, 카스티야의 여왕>은 이사벨 1세의 삶에 대한 OST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을 담은 음반으로 영화나 다큐를 만든다고 할 때, 수록된 음악을 주요 장면에 그대로 사용해도 좋을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사벨 여왕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그녀의 삶의 주요 순간들인 투르크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 경쟁자인 발트라네하의 후아나의 탄생, 아라곤의 페르난도와의 결혼, 카스티야 여왕 즉위, 그라나다 정복, 개종을 거부한 무슬림의 추방 등, 사건을 직접 다루거나 관련된 음악을 담고 있는데, 장르도 다양해서 어떤 곡은 로망스이기도 하고, 어떤 곡은 기악곡이기도 합니다. 
 

 
수록된 음악들은 아래와 같은 이사벨 1세와 관련한 주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451    Birth of Isabella of Trastamara
1453    Constantinople is taken by the Turks
1454    Henry IV, crowned King of Castile 
 
1350년 지브롤터의 무슬림을 포위하고 있던 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11세가 흑사병에 걸려 죽게 되는데, 이는 유럽에서 통치 기간에 흑사병으로 사망한 유일한 통치자였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적자인 페드로와 사생아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후임으로 유망 시 되던 트라스타마라의 엔리케 사이에 의 오랜 내전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엔리케가 승리함으로써 카스티야에 트라스타마라 왕조가 성립되게 되었습니다. 이 엔리케 2세의 후계자인 후안 1세, 엔리케 3세를 잇는 후안 2세가 성인이 되기 전에는 그의 모후인 카탈리나와 삼촌인 (안테케라의) 페르난도가 섭정을 했는데, 1410년 아라곤의 마르틴 1세가 후계자 없이 죽은 뒤, 선출위원회는 페르난도를 왕으로 선출하게 되어, 타라스타마라의 혈통이 카스티아와 아라곤의 왕가에 양쪽에 흐르게 됩니다. 후안 2세를 이어 카스티아의 왕이 된 것은 이사벨의 이복 오빠인 엔리케 4세였습니다.    


1462    Birth of Joanna of Castile (la Beltraneja)
1469    Marriage of Ferdinand of Aragon with Isabella of Castile (19 October)
1470    Civil war in Catalonia against John II of Aragorn (1458-1479)
1474    Isabella I, crowned Queen of Castile
1478    The Inquisition is established
 
엔리케 4세는 성불구자로 의심받았는데, 뒤늦게 딸 후아나를 얻었고, 후아나는 엔리케 4세의 후계자로서의 적법성도 인정받았습니다만,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왕을 선호하던 세력에 의해 엔리케 4세의 딸이 아닌 벨트란 데 라 쿠에바의 딸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되어 후아나 라 벨트라네하라는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오빠인 엔리케 4세는 이사벨의 상대로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사벨은 아라곤의 페르난도와 도망을 한 뒤 결혼을 하고, 결국 엔리케 4세 이후의 왕권 다툼에서 승리 후 카스티야의 여왕이 됩니다. 아울러 교황청의 허가를 얻어 자체적인 종교재판권을 얻어내고, 이 권한은 큰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III
1479    Ferdinand Ⅱ, crowned King of Catalonia and Aragon
1480    "Las Cortes" (Parliament) of Toledo
1482    Alhama is occupied by the Castilians
1492    The conquest of Granada
 
1479년 마침내 이사벨의 남편인 페드난도가 아라곤의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동시에 이사벨의 남편의 지위로서 카탈로냐의 왕의 지휘도 획득하여, 이사벨과 공동통치를 시작하고 톨레도의 코테스를 시작으로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왕권이 공고히 됩니다. 이후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고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에서 완전히 몰아냅니다.

IV
1492    The unconverted Jews are expelled from Spain (2 January)
1492    The discovery of the New World by Columbus (12 October)
1493    Treaty of Barcelona (France returns Roussillon and Cerdagne to Spain)
 
그라나다의 정복으로 가톨릭 단일 종교 국가로서의 기틀이 완성됩니다. 그간 유대인들을 포함한 이교도는 차별과 인정의 사이를 오가는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생활을 해왔는데,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는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카스티야와 에서 몰아내는 칙령을 발효합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막상 인허하지는 않고, 다른 국가에서 이용하는 것도 막던 애매한 입장으로 생활비를 주면서 묶어두던 콜럼버스의 항해를 허락하고 그 위험천만하고 사기성이 농후했던 여행은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뜻밖의 결과로 돌아옵니다. 외교적으로는 정략결혼으로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취해 반세기 전 프랑스가 차지했던 아라곤의 영토인 루세욘과 세르다냐를 차지하는 등 영토확장을 이룩하고, 이 결혼을 통한 외교는 훗날 카를로스/카를 5세의 방대한 제국의 기원이 됩니다. 

V
1496    Pope Alexander VI bestows on Ferdinand and Isabella the title of Los Reyes Católicos 
              - The Catholic Monarchs (19 December)
1497    Death of the Catholic Monarchs' heir, Prince John (4 October)
1502    The unconverted Moslems are expelled from Spain
1504    Death of Isabella I of Castile (26 November)
 
이사벨 1세와 남편 페르난도 2세는 교황으로부터 가톨릭 부부왕의 칭호를 얻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지만, 1남 4년 중 제국의 후계자인 후안 왕자를 잃어 이사벨 여왕의 사후 차녀 후아나 공주 부부와 남편 페르난도 2 세간의 카스티야의 통치에 대한 갈등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1502년에는 개종하지 않은 이슬람 신자들에 대한 추방이 이루어졌고, 1504년 11월 방대한 스페인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이사벨 1세는 사망하고, 이후 후아나 공주의 아들이자 합스부르크 혈통 스페인왕의 기원인 카를의 치세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아는 전성기의 스페인 제국을 이룩하게 됩니다. 

이 주요 사건들에 대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에 대해서는 투르크 행진곡을 배치하고, 알함마 함락에 대해서는 나바에즈의 알함마 함락에 대한 로망스인 "Paseabse el Rey moro" (무어왕이 행차할 때) 같은 곡을 배치하는 식입니다. 사건에 따라 어떤 곡은 장중한 성가곡이고, 어떤 곡은 궁정의 의례에 사용된 춤곡이며, 또 어떤 때는 풍자적인 가사를 지닌 노래로 편성되어 다양한 음악의 스펙트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두툼한 책자와 함께 디지팩 형태로 하이브리드 SACD에 담긴 이 음반은 스트리밍에 대비한 물리매체의 장점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음악은 그냥 단순히 감상하는 음악이 아닌 일종의 공부하는 음악으로, 내지 해설과 역사적 배경지식이 필수인 음악이라 할 수 있고, 그 점에서 북클릿 제공이 안 되는 타이달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2004년 발매 시에 사둔 물리매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음반의 경우에는 다른 서비스를 이용해도 PDF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듯합니다.) 지금도 가끔은 음반을 구입하는데, 이 음반처럼 낯설고 해설과 배경설명 없이는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 없는 종류의 음반이거나 늘 듣던 음악의 새로운 음반이라 할지라도 몇 년 전 나온 사발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처럼 한 시대의 지평을 새롭게 연 연주자의 목소리를 음악과 더불어 글로서 접할 수 있는 음반에 한정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유명 연주자의 유명한 레퍼토리의 새로운 연주의 경우에는 스트리밍으로 만족합니다.
 
조르디 사발의 음반 중에는 이 음반처럼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 특정 시대의 OST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 역사공부의 깊이를 더해주는 음반들이 제법 있는데, 이사벨 1세의 손자인 카를로스/카를 5세에 대한 음반이나 아라곤의 알폰소/알리폰소 5세에 대한 음반이 이 음반과 같은 방식의 구성이고, 펠릭스 로페 드 베가의 극장과 연관된 음악을 담은 음반이나 <돈 키호테>와 관련된 음악을 담은 음반 같은 특정한 주제를 담은 음반이 있습니다. 참고로 <돈 키호테> 음반은 아예 책자 형태로 되어 정보전달의 중요성이 더 강조된 음반인데, 사발은 매년 한 종류씩 이런 형태의 음반을 발매하고 있어 새로운 주제와 음악의 연결점을 공부하면서, 추가적으로 관련 분야의 책을 통해 앎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책이냐 음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라만챠의 돈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