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매니아 41>에 대한 소감
작년 <레슬매니아 40>에 대한 소감을 올린 지 벌써 1년이 흘러 <레슬매니아 41>이 끝났습니다. 전문 블로그는 아니지만 레슬매니아 정도의 중요행사를 1년에 한 번 정도 다루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41에 대한 소감을 올립니다.
아래에는 <레슬매니아 41> 경기결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
레슬매니아 1일 차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 (군터 vs 제이 우소)
같은 날 열린 제이드 카길과 나오미의 경기만큼이나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경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예측과 달리 제이 우소가 로열럼블에서 우승을 한 점, 제이는 이미 군터에게 여러 번 패배를 당한 전력이 있음을 생각할 때, 이번에도 제이가 지고 군터가 이기는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군터가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의 위상을 엄청나게 올려놓았던 것과는 달리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의 경우에는 여러 번의 성공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화제가 되는 경기를 만들어 내지도, 위상을 올리지도 못하는, 그래서 로열럼블 우승자의 챔피언십 결정전이 메인이벤트에서 밀리는 결과까지 나오게 된 마당에 아무리 군터만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군터가 타이틀을 계속 보유한다면 RAW의 타이틀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서사를 만들어내기 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갖게 될 것이 분명한 현시점에서 제이의 챔피언 등극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였다 생각합니다. 현재 제이의 인기를 생각하면 아무리 못해도 서머슬램까지는 제이의 인기로 RAW의 흥행몰이를 해나갈 수 있겠고, 그럴듯한 스토리와 갈등을 만들어 낸다면 제이의 인기와 타이틀의 위상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면서 제이 우소의 장기 집권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기 내용은 전혀 기대를 안 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군터의 탭이 너무 빨라서 카타르시스가 폭발하지는 못하고 뭔가 음식을 맛나게 먹고 디저트를 먹지 않은 느낌으로 끝난 아쉬움을 있지만, 제이가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연습해서 한 것 같아 마음에 듭니다.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워 레이더스 vs 뉴 데이)
아무런 서사없이 PPL을 위해 급조된 듯한 경기지만 노련한 두 팀은 그래도 보기 좋은 경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RAW에서 메인이벤트로 했다면 좋은 점수를 받았겠지만, 레슬매니아에서 하기에는 서사도 내용도 그냥 평범 이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워 레이더스는 경기력은 좋고, 실제 경기도 알차게 엮어나가지만 RAW의 남성 태그팀 로스터의 전반적인 침체와 함께 타이틀의 향방에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상황으로 전락했기에 타이틀 변경은 꼭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악역으로 전환해서 좀 지질하고 두서없는 행보를 계속하는 뉴 데이도 이번 챔피언 등극을 계기로 좀 더 존재감 있는 팀이 되었음 합니다. 그리고 RAW 태그팀의 문제는 경기력이 좋은 라틴계 두 팀(로스 가르자, LWO)을 같은 브랜드에 몰아넣고는 밀어주지도 않는 점, JD 맥도너의 부상으로 인한 저지먼트 데이의 침체를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특히 JD가 너무 그립습니다.
제이드 카길 vs 나오미
경기력이 나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명이 그럴듯한 서사와 프로모로 어떻게든 해보려 했지만 그냥 그저 그런 경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제이드 카길은 부상을 핑계로 몇 달간 부족한 경기력을 보강하기는 했던 것 같은데 연차는 배테랑이지만 경기력은 전혀 그렇지 못한 나오미와 합을 맞추니 몇몇 장면에서의 제이드 카길의 힘자랑을 제외하면 그리 인상적이지 못한 경기가 되었습니다. 나오미의 캐릭터 변화나 새로운 링기어 등이 너무 마음에 들어 약간은 기대를 했지만, 그냥 그게 전부였네요. 막상 힘으로 나오미를 드는 것도 좀 버거워하는 장면을 보니 제이드 카길을 살리려면 리브 모건이나 아니면 라이라 발키리아 같이 경기력 좋은 선수와 갈등을 만들어 인터컨티넨탈 타이틀과 관련한 PLE를 기획하는 것 정도가 답일듯합니다.
US 챔피언십 (LA 나이트 vs 제이콥 파투)
저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인기도 많고 생각보다 경기력도 좋은 LA 나이트와 존재감이나 실력이나 나무랄 바가 없는 제이콥 파투의 경기는 쌓아온 서사가 없었던 점은 아쉽지만 경기 자체는 나무랄 바 없었습니다. 제이콥 파투는 역할에 상관없이, 실력자는 관중이 챔피언십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챈트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블러드라인 스토리가 끝나자마자 점점 존재감을 늘리고 이제는 챔피언 등극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군터가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의 위상을 올린 것과 같이 제이콥 파투도 한동안 (파트타이머 로건 폴이 너무 오래 들고 있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US 챔피언십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엘 그랑데 아메리카노 vs 레이 페닉스
레이 미스테리오의 부상으로 급조된 경기지만, 엘 그랑데 아메리카노의 인기, 향후의 루차도르 갈등을 좀 더 끌고 가기 위해서는 레이 미스테리오 대신 레이 페닉스가 중간 보스 정도의 역할을 한번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고 경기 내용도 예상대로 좋았습니다. 서머슬램까지는 루차도르의 전설 엘 그랑데 아메리카노가 지겨워질 일은 없을 듯합니다.
WWE 위민스 챔피언십 (티파니 스트래턴 vs 샬럿 플레어)
많은 기대와 달리 정말 실망한 경기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생활 언급조차도 다시 애티튜드 시대의 맛을 보여주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저는 조금 긍정적으로 보았고, 더 기대를 했던지라 실망은 더 큽니다. 생각해 보면 티파니는 다자간 경기나 캐싱인 같이 중요한 스폿을 만드는 활약에는 능했지만 챔피언에 등극해서 1 대 1 경기를 주도적으로 만듬에 있어서는 불안했던 면모가 보였는데, 이번 레슬매니아는 큰 무대에서 1 대 1을 해낼 역량이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상대가 검증된 샬럿이 아니었다면 둘 다 욕먹고도 남았겠지만, 자세히 경기를 보면 순간순간을 놓치는 상황을 유발하는 것은 티파니로 보입니다. 이 큰 무대에서 이 큰 먹잇감을 이런 식으로 소비해 버리는 챔피언이라니! 나이아와 붙어 다니던 순간, 그리고 챔피언에 등극한 순간에는 저도 티파니를 정말 응원했건만, 아직 그 무게를 감당하기는 이른 너무 빠른 등극이 아니었나 생각되는 경기입니다.
세스 롤린스 vs 로만 레인즈 vs CM 펑크
배테랑이 무엇인지, 희생자건, 배신자건, 파트 타이머건을 떠나 무엇이 이들을 지난 세월 최고의 자리에 있게 하고 팬들이 열광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그야말로 교과서 같은 트리플 쓰렛 매치였습니다. 흐름도 자연스럽고 적당하고, 스폿도 적절히 터지고, 그 와중에 결말로 가면서는 몰아치는 그야말로 잘 짜인 드라마 같은 경기에 폴 헤이먼의 연기력과 애드리브(?)는 다소 식상할 수 있던 두 번째 로블로를 전설로 만들었습니다. CM 펑크 때와 달리 로만에게 행할 때의 뒷마무리 손놀림은 정말 대가의 솜씨가 아닐 수 없더군요. 사실 경기의 결과는 어느 정도 복선이 있었는데, 다들 세스가 폴 헤이먼에 말한 "이제는 나에게 빚졌다"는 말을 스톰프를 면하게 해 준 것에 국한해서 생각하던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 스톰프를 면한 것은 표면일 뿐이며, 세스의 의미의 첫째는 폴 헤이먼이 로만과 펑크 사이에 갈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스가 나서서 <상황>을 만들어 헤이먼이 누구(CM 펑크) 사이드에 설지 결정을 하게 도와주었지 않냐는 의미였지만, 더 깊은 속내는 이 지겨운 갈등을 끝낼 수 있는, WWE의 미래인 세스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기 결과도 WWE가 세스의 말대로 파트 타이머나 힘든 시절을 빗겨 돌아온 탕아에 기대지 않고 충성스럽고 헌신하는 사람들과 새롭게 1로 시작하는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여 대만족입니다.
레슬매니아 2일 차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이요 스카이 vs 비앙카 벨레어 vs 리아 리플리)
이 셋이 경기를 하면서 재미없을 수 없다는 생각은 했지만, 셋 사이의 짧고 다소 급조된 듯한 서사에도 경기력과 캐릭터가 좋은 선수들이 만나니 그야말로 최고의 오프닝 경기가 나왔습니다. WWE가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지만, 경기력이 이들만큼 좋으면 다소 급조된 서사도 경기를 하면서 설득력을 갖도록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네요. 아울러 결과도 만족스럽고, 관중도 이요의 실력과 노력에 대한 치하를 하는 것을 보니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그야말로 You deserve it!
신 시티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 (드류 매킨타이어 vs 데미안 프리스트)
이번 레슬매니아의 유일한 기믹 매치인데, 그간 보여온 둘의 관계가, 데미안은 저지먼트 데이와 갈등이 메인이고, 드류는 CM펑크와의 갈등이 메인이었기에, 그 역사는 깊지만 서사는 급조된 감이 있었는데, 역시 선수들의 실력이 경기를 통해 그 서사를 더 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정도 경기라면, 그리고 그 경기를 통해 보여준 감정선이라면 오히려 이 갈등을 좀 더 끌어도 좋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스맥다운 쪽의 타이틀 전선을 보면 이들이 파투의 US 챔피언과 엮인다면 파투의 챔피언십에 대한 소모가 빨리 일어날 것 같고, 그렇다고 WWE 챔피언 쪽에 엮기에도 끼어들 공간이 없으니 그냥 당분간 둘의 갈등으로 지난 시즌 드류-펑크 대립과 같은 흥행 몰이를 기획하면서 둘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브론 브레이커 vs 펜타 vs 핀 벨러 vs 도미닉 미스테리오)
은근히 기대하며 예상했는데, 진짜로 그 결과가 나오니 또 놀라운 경기입니다. 저지먼트데이의 내전, 여기에 이 네 선수의 지속적인 갈등과 아기자기한 게임들로 엮는 다면 당분간 재미있는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전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희생하는 칼리토가 처음에는 도미닉 옆에서 벨러를 구박하다 나중에 JD가 나와 핀 벨러가 챔피언에 등극하는 스토리나 그 과정에서 다시 브론 브레이커나 펜타가 챔피언에 등극하고 벨러 - 도미닉 갈등의 스토리를 스핀 오프로 정리하는 등의 여러 옵션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AAA의 인수로 루차들의 영입이 많아질 것을 고려한다면 그 스토리를 일부는 엘 그랑데 아메리카노와 엮고, 일부는 도미닉과 엮어도 좋겠고요. 그간 리브 모건과 함께 RAW의 가장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RAW와 어쩌면 WWE 자체를 상당부분 하드캐리했던 도미닉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라 생각합니다.
랜디 오턴 vs 조 헨드리
WWE와 TNA의 위상차를 보여준 경기이자 캐빈 오웬스 - 랜디 오턴의 경기 무산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 줄 서비스 게임으로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연출이 돋보인 경기입니다. 아무리 TNA 챔피언이라 해도 조 헨드리 입장에서 레슬매니아 무대에 서는 것은 충분히 RKO 두 번을 맞을 가치가 있는 일이었지 싶습니다. 그리고 그 두 번도 기습이었으니 딱히 실력차가 부각되지는 않아서 챔피언의 위상이 엄청나게 깎인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상대는 전설이 된 전설 킬러 랜디 오턴 아닙니까! 이런 기획에 기꺼이 동참한 TNA의 경영진의 혜안과 조 헨드리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AJ 스타일스 vs 로건 폴
로건 폴이 경기로는 아니지만 풀타임으로 근무를 하겠다고 천명한 했으니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만, 경기의 구성이나 스폿은 이 둘에게 기대할 수 있는 수준에는 못 미친듯합니다. 좀 더 경탄을 자아내는 스폿들이 있었다면 후배를 밀어주는 AJ 입장에서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이 부족한 서사를 레슬매니아를 시작으로 좀 더 이어가려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캐리언 크로스에 대해서는 WWE가 뭔가 생각이 있어 이런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감초를 계속 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생각인 건지.
위민스 태그팀 챔피언십 (리브 모건 + 라켈 로드리게스 vs 베키 린치 + 라이라 발키리아)
리브 모건과 라이라 발키리아가 있고 베키 린치와 라켈 정도의 선수가 욕심을 내지 않으면 나쁘지 않은 경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교과서적인 경기입니다. 사실 베일리가 스토리상 부상으로 처리되어 미스터리 파트너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베키가 이런저런 행사나 무대 뒤편에서 목격되었고, 라이라와 베키의 관계를 생각할 때 누가 베일리 대타로 깜짝(?) 등장할지는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으면서 인상적인 듯 표현해야 했던 베키의 경기력은 태그팀 매치라는 적절한 환경을 만나 무리 없이 경기를 소화하는 느낌이었고, 라켈도 뭔가 대단한 장면을 만들기보다 그런 장면과 스토리의 진폭은 리브에게 의지함으로써 나쁘지 않은 경기를 만들었습니다. 베키-리브의 악연을 생각하면 베키의 등장의 몰입감을 경기 중에 적절히 풀어낼 것으로 기획했겠지만, 그런 스폿이 터지지 않아 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리브가 타이틀도 잃고 베키가 복귀하자마자 타이틀 획득에 라이라는 콜업 1년 만에 더블 챔피언까지 되니 좀 설득력이 없습니다. 세 브랜드에 여성 태그팀 벨트는 하나밖에 없으니 뭔가 그럴듯한 다자간 경기라도 만들어 빠른 챔피언 교체가 필요할 듯합니다. [그런데 직후에 펼쳐진 RAW의 결과를 보니 타이틀 변동은 베키의 화려한 복귀를 위한 떡밥에 불과했네요!]
WWE 통합 챔피언십 (코디 로즈 vs 존 시나)
존 시나가 은퇴를 앞두고 턴 힐을 했고, 예고된 은퇴까지 아직 많은 기간이 남아 있음을 생각하고, 시련을 좋아하는 코디에게도 지금쯤은 새로운 시련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시나의 챔피언 등극은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어떻게 그 충격을 만들어 내고, 존 시나 스토리를 흥미롭게 이어나가 영예로운 은퇴 경기와 코디의 타이틀 재획득의 서사를 풀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 이번 경기로 시작될 것이기에 그 과정과 서사에 오히려 관심이 있었던 경기입니다. 존 시나와 코디의 느린 서사는 경기의 내용과 상관없이 매우 훌륭하게 진행되었습니다. WWE를 경기력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드라마였죠. 특히 시나의 행동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는 그간 턴힐을 하면서 내세운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RAW에서의 깜짝 RKO 이벤트는 WWE가 또 하나의 역사를 쓰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전반적으로 볼 때 흥미로운 경기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레슬매니아>라는 큰 이벤트에는 부족했던 첫날과, 그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은 둘째 날의 극명한 대비가 드러난 레슬매니아 41 이벤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