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도쿠가와 가문은 어떻게 원예로 한 시대를 지배했는가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 글항아리)
도쿄(에도)에서는 소바(메밀국수)를 많이 먹고, 오사카는 우동을 먹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생쌀을 먹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던 이에야스의 지시는 정말로 그 전황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결정이었을까요? 벚꽃은 정말 죽음을 숭상하는 무사정신의 표상으로 추앙되기 시작한 것일까요? 이런 소소하고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식물과 그 생태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낸 책이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도쿠가와 가문은 어떻게 원예로 한 시대를 지배했는가>입니다. 책의 원제는 조금 더 추상적이자 센고쿠-에도막부 시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좀 더 흥미를 자아낼 제목인 <도쿠가와가의 가문(家紋)은 왜 세잎의 제비꽃인가>인데, 책의 종반부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저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생태학을 전공한 학자로 농림기술연구소 등을 거쳐 시즈오카 대학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식물과 그 생태에 대한 지식으로 센고쿠-에도막부 시대를 중심으로 한 식물과 역사, 풍물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일본의 역사를 다루고는 있지만,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식물과 연관되는 부문만 다루기 때문에 간략한 지식만 있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행여 일본 역사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읽어나가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매우 짧은 호흡으로 되어있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직접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참고 삼아 위에 언급한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이에야스가 정착한 에도(도쿄)는 서쪽은 후지산의 화산재가 퇴적된 무사시노 대지와 바다 쪽의 습지대인 도쿄 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후지산 화산재가 퇴적된 간토지방은 메마른 토양으로 쌀이나 보리가 아닌 메밀을 재배할 수밖에 없었고, 일종의 구황작물로 메밀로 된 음식을 먹었지만, 오사카가 위치한 간사이 지방은 예로부터 발달된 곳이라 이런저런 물품의 품질이 우수했고, 에도 막부가 성립되면서부터는 좋은 물품을 에도로 보내곤 했습니다. 그중에는 풍미가 있고 연한 양조간장도 있었는데, 이 간장은 간사이 지방에 풍부한 흰살생선에 어울리는 간장이었던 반면, 간토지방의 경우는 물자 부족으로 간장에 밀을 첨가해 담갔을 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 잡히는 청어 등의 비린 생선이 어울리게 진한 간장을 담갔는데, 이 진한 간장이 가쓰오부시와 만나 메밀국수를 맛있는 음식으로 변모시켜 갑자기 인기요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재료의 풍미를 살리는 담백한 간장은 우동과 어울리기에 간사이 지방은 여전히 우동이 유명한 것이지요.
세키가하라 전투 전날은 추적추적 가을비가 왔는데, 비로 인해 동군과 서군 모두 전투 전날 제대로 된 밥을 지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지만 배고픔을 이길 수 없는 병사들은 생쌀이라도 먹으려 했지만, 이에야스는 전군에 생쌀 취식 금지령을 내리고 쌀을 몇 시간 물에 담가 먹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반면 서군의 이시다 미쓰나리는 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아 생쌀을 먹었구요. 당연히 생쌀은 소화가 잘 안되는 지라 아마도 병사들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을 것이고 미쓰나리 역시 설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 생쌀과 불린 쌀이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황을 바꾸는데 일조했을지도 모릅니다.
진짜로 무사들이 서로 목을 쳐가며 벚꽃 같은 죽음을 불사하던 시기가 지난 에도막부 초기까지 벚꽃은 군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한그루를 보며 감상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에도가 조성되고 하천범람으로 인한 수해를 막기 위해 강가와 매립지에 벚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벚나무 군락의 기원이 되었으며, 특히 우리가 흔히 아는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고 흐드러지듯 한 번에 지는 왕벚나무는 에도시대 중기에 도입된 것으로 이전의 벚나무인 산벚나무는 개화시기도 나무마다 제 각각이고, 개화기간도 길어 우리가 아는 벚꽃의 풍광과 <사무라이 정신>과는 전혀 다릅니다. 한마디로 벚꽃과 같이 한 번에 지는 무사정신이라는 것은 무사가 사실상 관료가 되어버린지 한참 후에나 과거를 추억하며 붙인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이 책에는 이와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담겨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