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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카메라 - IT

[IT]RIP : Steve Jobs, 1955-2011 - 개인적 추억들

by 만술[ME] 2011. 10. 7.
아마 블로그를 비롯해서 이곳 저곳에 애도하는 포스팅, 향후의 IT계를 진단하는 포스팅, 그의 업적을 기리는 포스팅들이 넘쳐날 겁니다. 저는 그냥 저와 그, 그리고 그가 세운 애플에 대한 추억들만 간단히 적는 것으로 애도하고자 합니다.


1. 제 첫 컴퓨터는 APPLE II+ 였습니다. 물론 정품은 아니고 당시 우리나라 IT를 주도(?)했던 청계천에서 만든 복제품이죠. 저는 오리지널과 똑같은 제품을 원했기에 당시 일부 키보드 분리형 제품(흔히 IBM타입이라 불렸습니다)이 있었지만 일체형에 메모리도 오리지널에 맞춘 48KB(네, KB입니다)로 된 제품을 골랐습니다. 외형에 로고와 이름까지도 일치하는 제품으로 골랐죠. 그때야 중학생 때니 스티브 잡스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고 그냥 오리지널의 형태와 모양, 그리고 그 느낌이 좋았던거죠.

카세트 레코더와 연결해 프로그램을 로딩하고 BASIC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지웠다 해보고 나중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별도로 달아서 이런 저런 게임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샘블리어까지 어느정도는 습득했습니다. 이 과정중에 이 멋진 기계를 만든 두명의 스티브에 대해 알게 되었고 두명의 이름과 정신은 늘 제 기억에 남아 있었죠.

2. 그리고 세월이 흘러 두번째 컴퓨터를 구입한 건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마친 뒤였습니다. 재학기간에는 학교의 메인프레임과 선배의 AT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졸업하고 나니 집에 PC가 필요하더군요. 대학 때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컴퓨터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상이 있었기에 매킨토시를 두번째 컴퓨터로 선택 했습니다. 386SX급인 LC II를 486DX급의 값으로 구입한거죠.

지금 아이패드를 가지고 그러듯 그냥 만지고 놀고, 프로그램 깔고 커스터마이징 하고, 하이퍼 카드로 뭔가 만들고, 리소스도 직접 편집해보고 하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부수적으로 워드프로세싱과 시프레드 시트도 사용했지만 그냥 맥을 만진다는게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래한글로 네배 확대된 비트맵 글자나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로 인쇄할 때, 원하는 폰트와 싸이즈로 트루타입 인쇄를 잉크제트로 할 수 있다는 자부심, 접대부 화장 빛깔로 본질을 속인 Windows 3.1이 GUI의 전부인줄 아는 사람들에게 System 7의 장점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애착이가는 컴퓨터였습니다.

MS가 맥을 위해 만들었던 프로그램들이 어느날 Windows에서 더 잘 돌아가는 걸 보았을 때, 날이 갈수록 맥은 고전하는데 짝퉁인 Windows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마음 아팠죠. 입사해서 맥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다가 이상한 놈 취급 받기도 했구요.^^ 회사서는 PC를 사용했지만 집에서는 낡은 LC II가 제 진짜 컴퓨터였죠.

3.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언젠가는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회사와 현실은 그런 스타일의 프레젠테이션 보다는 빽빽한 보고서 스타일의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더 선호했죠. 언젠가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 바탕에 글자 몇자, 그림 몇개만 들어가는, 3막으로 구성 되었지만 "하나더"를 말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해보고 싶었죠. 물론 몇번은 그런 기회가 있었습니다. 잡스를 카피해서 수백명의 고객들 앞에서 스타워즈 3부작을 들먹이며 명작을 이야기하고 협력사 대표들 모아놓고 검은 화면에 잠깐씩 등장하는 단어들만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죠. 아무튼 덕분에 어느순간 PT좀 하는 사람으로 회사서 통하게 되었습니다.

4. 주위서는 가끔 저를 어얼리 어댑터 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제법 있지만, 새로운 기술을 삶에 적용하는데는 보수적인 스타일이라 다른 사람들이 모두 MP3로 음악을 들을 때 그냥 집에서 음악을 듣고 이동중에는 책만 읽곤 했습니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게 힘든 상황이 발생하고, 그럴 때 음악이라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때마침 구입한 바흐전집을 집에서만 들어서는 목표한대로 듣기 힘든 점도 있었구요. 뒤늦게 MP3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두말할 필요 없이 아이팟이었습니다.

음악을 듣는 기능에 충실하고, 용량이 커서 바흐전집을 통으로 넣어도 될 정도고, 클릭휠로 곡을 찾고, 태그로 분류하는게 다른 MP3플레이어와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디자인도 좋구요. 처음 구매한 아이팟 포토가 고장난 뒤에도 다시 아이팟을 구했고(선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동시에는 아이팟을 쓰고 있습니다.

아이팟은 제가 음악을 분류하고 찾고 듣는 방식에 잘 어울리는 장비입니다. "클래식>고전파>베토벤>교향곡>9번>푸르트뱅글러>42년>1악장.MP3" 같은 폴더로 찾아들어가는 방식이었다면 결단코 MP3플레이어를 구입하지 않았을겁니다.^^

5. 스마트폰은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습니다. 예전에 PDA를 써봤기에 작은 화면과 터치스크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이폰도 디자인에서는 갖고 싶었지만 비싼 가격과 요금제를 생각하면 남의 일이었죠.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도 그냥 화면커진 아이폰이었고, 노트북도 쓸일 없는데 기능도 약한 아이패드가 뭔 쓸모가 있겠냐 생각되었죠.

그러나 아이패드가 만든건 전혀 다른 영역이었고, 저도 그 영역에 빨려들어갔습니다. 과시적이기 위해서라면 더 많은 활용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저는 실용적인 것을 중시하는 성격이라 기존의 방식이 문제가 없다면 그 방식을 고수합니다. 그럼에도 아이패드로 활용되는 부분이 많더군요. 아이패드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회의 때마다 두꺼운 바인더를 들고 다니며 뒤적거리고 있을 것이고, 매일 제가 책임지고 있는 9개 프로젝트의 진척 사항들을 프린팅 해서 들고 다니며 점검하고 지시해야 하고, 거실에서 TV보면서 각종 매체의 뉴스와 블로그들을 구독할 수 없을 것이며, Gramophone을 다시 정기구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TED를 통해 얻는 영감들도 훨씬 적었겠죠.

이제 지금 쓰고 있는 핸드폰도 바꿔볼까 생각중입니다. 아이패드를 쓰면서 스마트폰이 있어도 활용할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거든요. 아마 아이폰4S 또는 5가 되겠죠.

6. 그냥 쉽게 분류한다면 저는 애플빠일겁니다. 몇년전 출간된 잡스의 (비공인) 전기를 통해 그의 단점들과 실수도 많이 알게 되었지만 그의 인간적 매력이 더 좋습니다. 아마 이건 늘 좌파인 (비단 정치적인 성향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제 성향 때문일지 모르죠. 지난 포스팅에서 말했던 것 처럼 저는 기득권을 바탕으로 시장을 확장해서 다 해먹으려는 사람들 보다는 우리가 생각도 못한 시장을 만들어내서 가슴 떨리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이기는 세상이 되길 원합니다.

그런 세상을 꿈꾸고 만들고자 했던 잡스의 명복을 빕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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