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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onderful Life

구조조정의 미스테리

by 만술[ME] 2009. 5. 19.
이런 저런 포스팅을 통해 제가 다니는 회사가 별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불과 2년전만 해도 2조 매출을 준비하고 직원들 해외경험을 시켜야 한다고 년간 일정 금액을 배정하고, 창의력을 키운다고 년간 4회 이상의 공연 및 문화행사를 지원하던 회사가 작년부터 예산삭감, 임원급여 삭감, 인력감축을 비롯한 이런 저런 구조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프로젝트는 중단할 예정이기까지 하구요.

제 스스로가 구조조정의 대상이기도 했고 (4년정도 이끌던 팀을 해체해야 했습니다) 또 구조조정을 위한 이런 저런 기본작업들을 해온 입장에서 볼 때 제가 경영학을 전공했다면 연구하고픈 주제들이 많이 튀어 나오더군요. 혹시 이쪽에 관심이 있으시면 연구 주제로 삼아 보기 바랍니다.^^ (재미 있는 것은 제가 다니는 회사만 이런 이상한 일을 하는게 아니고 대부분 회사가 그렇더군요!)



(1)통폐합의 효과?

구조조정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중 하나가 기구조직의 통폐합입니다. 헌데, 이 통폐합의 효과는 대부분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우선 폐지되는 부서들은 대부분 지금 당장 실적이 나지 않는 분야의 부서들인데, 또 이 부서들은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만들어 놓은게 대부분입니다. 제가 이끌던 팀 처럼 "신사업전략팀" 뭐 이런거죠. 결국 대부분 회사들은 농부와는 달리 내년 심을 씨앗까지 먹어치워 버립니다.

부서의 통합 역시 정말 재미 있습니다. 상당수의 통합은 마치 축구팀과 야구팀을 합쳐 놓는 격입니다. 일단 부서 숫자를 줄이고, 인원을 줄여보자는데 급급한 구조조정이니까요. 문제는 후보없이 축구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9명으로 축구를 할 수는 없다는데 있고, 야구선수들로 축구도 못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야구팀과 축구팀이 합쳤다고 발야구를 잘하느냐하면 그것도 아니죠.^^ 차라리 각각의 조직의 고유한 특성과 업무영역을 인정한 채 그 조직내의 인원감축 등으로 슬림화 하는쪽이 (즉, 당분간 후보없이 축구팀은 축구를, 야구팀은 야구를 하는 것이) 야구팀과 축구팀을 합쳐 발야구팀을 만드는 것 보다 효과적이란 생각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들은 기구조직도의 수정이라는 과시적 효과를 실제적인 업무 효율과 효과 보다 더 중요시 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흔히 이런 발야구팀식의 통합은 한지붕 세가족 분위기의 조직이 되어 버리거나, 조직과 절차가 아닌 사람으로 일하는 조직이 되기 때문에 결국 조직력과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실례로 저는 현재 팀장이 아닌 평팀원의 신분이지만 담당 임원과 팀장이 제가 맡은쪽 업무를 전혀 모르고 챙기고픈 생각도 없는 듯하기 때문에 매일 본부장 주재 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더웃기는건 그 회의에 저희 팀 팀장은 참석 않는다는 것이죠.

(2)업무를 잘하면 팀장도 잘할까?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조직 위계상 적당한 위치에 오르면 조직원들의 성향이 보입니다. 이 녀석은 업무는 잘하지만 리더쉽은 없다던가, 이 녀석은 업무는 좀 떨어져도 리더로 제격이라던가, 그 리더도 프로젝트의 리더가 좋은지 아니면 팀스타일의 리더가 좋은지 등이죠. 아울러 숫자와 분석쪽이 좋은지, 영업쪽이 좋은지 등도 들어나죠.

문제는 조직과 경영자들은 이상하게 이런 구분을 별로 못하는 듯 하다는 것입니다. 조직의 책임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업무가 뛰어나거나 윗사람들에 아부를 잘 한 사람들이지, 조직을 리딩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란 것이죠. 평상시에도 이런 리더쉽의 문제는 심각한데 위기상황이 되면 이런종류의 리더쉽이 부족한 업무 지향형 리더는 스스로 패닉상태에 빠져 조직을 잘못된 길로 이끌곤 합니다.  

또 축구의 예를들면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최고의 주장이거나 감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최고의 스트라이커 출신이 최고의 감독이 될 수도 있지만 전혀 무명이었던 선수가 최고의 감독이 될 수도 있죠. 즉, 축구에 대한 지식, 능력과 조직을 이끄는 능력은 별개의 것이란 사실입니다. 헌데 때로 구단주들이 단순히 스타플레이어라는 이유로 감독으로 기용하는 실수를 하듯, 회사도 일잘하는 사람을 팀장으로 앉히는 실수를 범하곤 합니다.

그리고 더욱 끔찍한 것은 더 상급의 리더들도 조직을 챙기는 리더쉽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조직의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하부조직 리더의 리더쉽 부재 때문이란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죠. 리더쉽에 따라 우리나라 축구팀도 월드컵 4강에 오를 수 있는데, 경영자들은 일단 똑똑하고 일잘하는 녀석을 조직의 장으로 임명했으니, 문제가 생기면 그건 조직원 개인개인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게 되죠. 그러면 메스를 엉뚱한데 들이대는 처방을 하게 됩니다.

(3)유효숫자는 몇자리까지가 적당할까?

자연과학을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유효숫자의 개념을 잘 아실 겁니다. 123.45와 123.450은 전혀 다른 숫자이고, 123.45000은 또 전혀 다른 숫자죠. 실험실에서는 이 유효숫자 한자리를 늘리기 위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경영적 판단을 위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 실제로는 의미없는 유효숫자 늘리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이번달 실적을 예상하고 다음달, 그리고 연간 어느정도의 매출이 발생할지 등을 전망하는 경영회의를 합니다. 뭐 "월례회의", "월간 실적 보고" 등등의 회의죠. 이 경영회의를 통해 분석하고 판단하는데 회사의 규모와 업종에 따라 유효숫자의 자릿수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그리고 어떤 회사든 그 정확도와 정밀도는 좀 러프해도 경영적 판단을 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죠.

헌데 대부분의 회사들은 이 경영적 판단을 위한 숫자를 만들어 내는데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말이 되면 기획과 영업 등의 부서에서는 회의자료를 위한 실무급 회의들이 이루어집니다. ERP 등이 구축되어 있어도 보고서는 반듯한 파워포인트 형식으로 나와줘야 하며 상당부분은 수기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저는 자기들 보유 주식은 프로그램으로 매일매일 잘도 보고, 잘도 매도하고 하면서 회사 경영을 위한 판단은 그냥 ERP 등의 프로그램만 보면 못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회의를 위한 숫자의 유효숫자가 반도체 만들기 위한 유효숫자급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4)일하기 보다는 딜(deal)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뜬다?

평소에도 일하는 사람 보다는 딜하는 사람이 눈에 띄고, 누구나 일 보다는 딜하는게 재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가 어렵고 구조조정이 벌어질 수록 일하는 사람보다 딜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 납니다. 일은 잘하면 기본이요, 못하면 쪽박이지만, 딜은 잘하면 대박이요, 못해도 튈수는 있으니 상박은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점점 일할 사람은 없어지고 배는 산으로 가죠.

몇가지 더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다음기회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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