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블로그도 시들해진다. 처음에는 그냥 블로그라는게 유행해서, 그리고는 그래도 누군가에게 어떤 정보도 제공하고 그냥 내 생각을 정리 할 생각으로 계속한 일인데 누군가 미지의 읽는 사람을 의식하고 글을 쓴다는 게 점점 힘들어짐과 동시에 그 누군가 중 최소한 몇몇은 내가 (표면적이고 온라인적이라도)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다들 떠나 버렸다는게 힘들게 한다. 결국은 나 혼자 떠드는데 막상 그 떠드는 내용은 개인적인 사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그 청취자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건 정말 헛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 사유를 위한 글이라면 "공개"로 글을 쓸 이유가 없지 않는가!)
물론 아직도 하루 300명 이상, 때로는 거의 5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방문한다. 물론 얼마나 많은 검색, 포탈들의 봇들이 오는 것인지 모르지만. 봇이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두 일회성 방문으로 유입경로와 검색어를 보면 <킹덤 오브 헤븐>, <로스트> 같은 것들이다. 음악에 대한 것도 그냥 간단한 검색어로 보인다. 아마 그냥 영화에 대한 정보나 음악에 대한 간단한 정보 정도를 얻기 위해서 아니었겠나 생각된다. 깊이가 있건 없건 누군가의 생각을 듣기를 원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1회적인 방문? 아마 포탈을 타고 들어온 그 목적글 이외에 다른 유사한 글에 조차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제는 이런 상황에서 블로그를 하는게 좀 힘들다.
어차피 아무도 “제대로” 듣지않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냥 에버노트에 해버리는게 좀 더 솔직할 수 있지 않을까?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이 블로그의 모든 글들에서 보이는 그 특유의 어투로 글을 쓰는 것도 질린다. 예전에도 약간은 현학적이면서도 쉬운 듯, 공손한 듯 하면서도 불친절하게 글을 썼지만 이 블로그의 글들을 보면 모두 노골적이지 않고 의도된 중의성을 지니고 의도된 겸손함을 지니고 있다. 더 쉽게 쓸 수 있는 있는 경우도 쉽게 쓰는 것처럼 하면서 일부러 어렵게 쓴듯하기도 하고 더 어렵게 쓸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풀어 놓을 수 있음에도 그냥 적당히 수준을 내려 적어버린다. 경영진 앞에서도 매우 신랄한 용어들을 남발하고 분명하고 단정적으로 이야기 했던 내가 이 블로그만은 그렇지 않은게 우습다.
내가 생각하는 블로그의 수준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냥 내 블로그의 포지셔닝은 (인터넷에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적당히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 그런 블로그였는데, 말하자면 빛좋은 개살구 정도였는데 이제 그 틀 때문에 글을 쓰기가 힘들다. 예전에는 간단한 내용, 정보의 전달도 가끔은 올렸는데, 이젠 그럴 수 없다. 한편으로는 자꾸 쓰레기를 생산하는 다른 블로거와 유사해 지는게 두렵기 때문이다. 수준이 높지 않고 나의 “진짜”가 담겨 있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읽을 만한 글, 최소한 다른 곳에서는 다루지 않은 내용 (그게 최소한 국문으로라도)을 올리려다 보니 점점 올릴 글이 없다. 더구나 이제는 예전 엠파스 블로그 시절처럼 이런 글을 쓰도록 자극하는 이웃도 없지 않는가!
솔직히 이런저런 지름 인증글을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첫째로 그런 것이 부담 없이 블로그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이들 사진 보다 더 개인적일 수도 있는 그 “취향”의 영역을 공개 할 수 있는 용기에... 난 결코 내가 지르고 듣는 음반들, 읽는 책들을 올리진 못할 꺼다. 매일 먹는 내 밥상을 여기 올릴 수는 없지 않나! 블로그에 프랑스 정찬을 먹는 사진만을 올리는건 아니고 어제 해먹은 부대찌개를 올릴 수도 있지만 이건 다 “의도”가 있는 짓 아니겠나? 이런 의도도 없이 진짜로 “일상”과 “취향”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올리고 있다면 정말 순수하거나 정신 없는 친구들 아니겠나 싶다. (이문장을 많은 블로거 - 이 블로그의 주인장도 포함한다 -에 대한 비난으로 생각지 말고 순수함에 대한 찬양으로 생각해달라!)
그래서 이 블로그의 글들은 적어지고 에버노트의 글들은 늘어간다. 어쩌면 그곳의 글들 중에도 적당히 검열삭제를 거쳐 수준이 조절된 형태로 이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어제 읽은 책에 대한 감상과 수십개에 달하는 내 인용문들, 우연히 퇴근길 라디오에서 들은 어떤 연주자의 Goldberg에 대한 감상 같은 것은 블로그에 올라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더구나 내 노트들은 리히테르의 <음악수첩>처럼 공개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결론 - 나를 제외하고 안타까울 사람이 있을리는 없지만 내 블로그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뭔가 이 블로그가 다른 목적과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는 한은 말이다.
MF[ME]
*내가 블로그 또는 온라인 자아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글을 보면 좋겠다. 물론 과연 그 글도 내 진짜 생각인지는 알아서 판단하시고. <인터넷 자아의 왜곡 또는 전문 블로그>
'text, lies, and stereotyp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 여행자는 펭귄 텀블러로 커피를 마시며 <21세기 자본>을 읽는다 (2) | 2014.09.03 |
---|---|
노란 리본 속에서 <햄릿>의 한구절 (0) | 2014.04.24 |
두 가지 사건, 그리고 두 그림 (2) | 2014.04.17 |
교장 선생님 나빠요! (0) | 2013.11.15 |
댓글